2014/01/19 21:56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⑤ 버블 붕괴와 디플레이션의 시작 Business

이전에 작성했던 포스팅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①서론 및 장기정체기의 관찰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②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함정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③ 개방경제에서 환율의 의미'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④ 엔고가 유익하다고 착각한 이유'

에 이어서 이번에는 일본의 버블 붕괴와 그후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는 시기를 살펴보는 부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Ⅶ. 버블 붕괴


원유가격 수급관계 변화의 결과로서 발생한 달러표시 원유가격의 하락과 엔고의 지속은, 한편으로 교역조건 개선에 의한 기업수익의 대폭적인 개선을 일으켰으나, 동시에 인플레이션의 급속한 하락을 초래했다. 이는 저금리 정책의 유지를 확신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저인플레, 저금리, 저 원유가격 또는 달러라고 하는 「3저현상」이 정착, 그것이 기업수익의 확대를 초래, 설비투자 확대를 야기하여, 후에 버블 경기라고 불리우게 될 내수주도의 경기확대를 견인하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인이 구조적 경기확대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의 이면에는, 이를 초래한 원유가격을 비롯한 일반적인 거시경제적인 조건이 변화한다면, 경기확대는 경기후퇴로 변화할 수 밖에 없는 것이었다.

최초로 생각해야할 것은, 노동시장 수요관계의 변화이다. 실업률은, 87년 5월에는 노동력 조사 개시이래 최고인 3%대 까지 상승했다. 제2차 석유위기 이후, 「마른 수건을 짠다」라고 형용되는 인력감축이 시행되어, 임금상승이 억제된 것에 더해, 이러한 실업률 악화가 생겼기 때문에, 그때 부터 낮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임금인상 압력은 대폭 억제되었다. 그러나, 87년 6월 이후가 되면, 경기확대 와중에 실업률은 급속하게 저하되어, 임금은 상승압력을 받게되었다. 여기서도 기존의 구조주의적인 사고방식의 파탄이 발생하고 있었다. 즉, 80년대 전반기 실업률의 완만한 상승은, 구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실업률의 하락은 급격한 임금상승과 인력부족을 초래, 인플레이션의 상승을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교역조건 개선에의한 기업수익 증가라고하는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경기확대의 와중에 임금은 상승세로 전환되었지만, 인플레이션은 낮게 유지되고 있었다. 이렇게, 기존 구조주의적인 관점은 거꾸로 실업률의 저하를 경기순환의 결과로 발생한 것이 아닌, 구조실업률의 하락으로 이해하게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실업률이 2% 전반까지 하락함에 따라, 임금비용은 확실히 상승세로 전환하여, 기업부문 현금흐름의 급격한 신장은 억제되게 된 것이다.

그 한편으로, 내수산업에 의한 리조트 개발과 골프장 건설로 대표되는 건설투자 중심의 거액 설비 투자는, 약해지기는 커녕 점점 확대되어갔다. 이렇게, 89년에 들어서면, 일본 기업부문 전체로는 지금까지의 자금 잉여상태로 부터 자금 부족 상태로 전환되었다. 그런데, 주가는 89년에 들어서도, 오름세가 꺾이지 않고 89년말에는 40,000 포인트 까지 상승하였다. 이러한 상황아래, 90년대초에 주가폭락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여름에는 걸프전이 발발하여 원유가격은 그때 까지의 2배, 이어서 3배까지 급등하여, 호경기의 원인이 되었던 높은 교역조건은, 급속한 하락으로 전환되고 말았다.

이와 같이 높은 주가로 대표되는 자산가격의 상승을 일으킨 펀더멘털 요인이 부서져 떨어지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자산가격의 정책적 인하를 개시했다. 특히, 대도시 지역 주택취득의 곤란을 이유로, 부동산 가격의 인하를 의도하여, 정부는 3개 업종(부동산, 건설, Non-Bank) 융자규제 등 직접적인 긴축 정책을 발동했다. 그 후, 일본은행은 그때까지의 완화적 정책 스탠스를 변경, 매우 긴축적인 금융정책을 채용했다. 당시 금융정책의 스탠스가 얼마나 긴축적이었는지는 본원통화(high-powered money) 또는 통화량(M2 + CD)라고 하는 화폐 집계량의 급격한 저하를 보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 동일한 것을 정책이자율 추이로부터도 관찰할 수 있다. 일본의 주가폭락은 1990년 1월에 시작되었지만, 정책이자율인 익일 무담보 콜금리는, 그로부터 1년간 인상되어, 확실히 금융완화로 전환된 것은 그 이후로 부터 반년 뒤 이다. 이는 2007년 7월의 주가폭락 이후, FRB에 의한 미연준 기준금리(Federal Fund Rate) 이자율 조작과 비교하면, 얼마나 강렬한 긴축 정책이 실행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 14. 주식시장 붕괴이후 정책금리 추이


80년대말에는, 실업률은 2% 초반까지 하락, 임금상승이 기업수익을 서서히 압박하여 경기확대는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었기때문에, 조만간 자율적인 반전이 시작되는 것은 불가피한 상태였다. 그 조건아래, 과도한 금융 긴축이 지속된 것에 의해, 버블 경기는 대폭적인 경기침체로 향하게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Ⅷ. 버블 붕괴 후 거시경제 정책과 디플레이션의 시작



주가상승을 야기한 거시경제적 환경변화를 항상적인 변화 또는 구조적인 변화로 오인하고 있었기때문에, 그것이 반대로 뒤집히는 상황에서 주가·지가의 대폭 하락은 불가피한 것이 되고말았다. 이 주가 버블의 붕괴는, 기업수익의 감소로인한 대규모 경기후퇴와 겹치는 것으로, 다음에는 지가가 하락하는 국면이 오게 되었다. 그런데, 일본 금융시스템의 중심이었던 은행융자는 토지담보 가치의 안정성에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때문에, 지가의 급락이 기업수익의 급감과 동시에 발생함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은 크게 손상되고 말았다. 또한, 금융시스템 또는 은행 시스템의 위기는, 한 나라의 신용질서의 위기를 의미, 당연히 자산보유자(또는 투자자)의 리스크 회피행동을 강화하게 된다. 92년에 들어서면 투자가의 리스크 회피행동은 급격히 표면화되고, 주식, 채권, 외화라고 하는 일체의 리스크 자산에 매도 압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본래대로 하면, 이를 상쇄할 정도의 급속한 금융완화와, 자기자본 부족에 빠지게된 은행에의 자본주입 이라는 대책이 취해져야 마땅했다. 그러나, 현실은 자본주입 등은 실행되지 않았고, 또한 이자율 인하와 같은 금융완화의 속도는 불충분한 것으로 그쳤다. 이로 인해, 경기후퇴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정도로 격렬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93년에는 급격한 경기후퇴 국면은 마무리 되었지만, 그 시점에도 일본은행은 「과도한 저금리」가 다시 버블을 만들어내는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94년에 들어서도 장기이자율 상승 경향을 방치하게 되었다. 이렇게 금융완화 정책이 실질적으로 중단된 상황아래, GDP 디플레이터 기준으로 본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94년 후반부터 마이너스(-)로 전환되고 말았다. 이 GDP 디플레이터의 하락은, 실로 2009년 오늘(논문작성 시점)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사실상 디플레이션 상태가 시작된 것이 되고 말았다.

일본이 항구적인 디플레이션에 빠지고 만 결과, 미국을 시작으로 세계와 일본의 인플레이션율은 항상 큰 괴리를 유지하게되었다. 그것은 명목 엔화가치가 항구적인 상승압력을 계속해서 받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이 대폭적인 금융완화를 개시했던 95년에는 1달러 당 79엔 까지 엔화가치가 상승하게 되었다. 금융긴축과 명목 환율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어떠한 거시경제 모델을 상정해도, 물론 환율결정의 화폐적 접근을 선택해도, 포트폴리오적 접근을 취해도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명목환율은 금융정책의 스탠스를 반영하는 거울인 것이다.

이러한 엔고가 어느정도로 일본경제에 커다란 손상을 가했는지가 최근의 실증연구로 명확해졌다. Jorgenson and Nomura (2007)은, 1달러 당 79엔 이라는 엔고는, GDP 디플레이터로 측정한 일본의 실질실효환율은 구매력 평가를 78%나 초과했다는 추산을 보고했다. 이렇게 극도로 상승해버린 실질실효환율은, 일본 수출제조업 국내생산의 압축을 야기했을 뿐 만 아니라, 낮은 실질실효환율 상황이었다면 수출산업이 국내에서 시행하였을 설비투자도, 직접투자라는 형태로 해외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보통은 「내수」로 집계되었을 수출산업의 국내에서의 투자수요을 감소시키는 것이 되었다. 물론, 엔고는 수입 경쟁산업에의 압박을 야기했다는 것은 말할 것조차 없다.

이렇게 과도한 엔고가 발생하여, 순환적으로 발생한 93년 이후의 회복은 매우 빈약한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 후, 소비세 인상이 이루어질 것이 예상되었던 96년에는 높은 경제성장이 실현되었으나, 소비세 인상이 실현된 결과 발생했던 수요의 반동적인 감소가 생겼다. 이는, 아시아 통화위기와 동일한 시점에 발생하고 말았다. 그래서, 경기후퇴 우려가 강해진 와중에, 자산가격은 급락, 불량채권 문제는 급격한 악화가 재개되었다. 그리고 산요증권(三洋証券), 야마이치 증권(山一証券), 그리고 홋카이도 척식은행(北海道拓殖銀行)의 파산이 발생, 전면적인 금융위기의 양상을 나타나게되었다. 98년 이후 일본경제는 매우 심각한 경기후퇴 국면에 돌입하게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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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셨나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에는 일본의 장기 디플레이션 시기로부터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번 논문 번역은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참고문헌] 

岡田靖, 浜田宏一 (2009), "バブルデフレ期の日本の金融政策", 内閣府 経済社会総合研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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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일화 2014/01/21 20:43 # 답글

    잘 봤습니다. 그러니까 경기후퇴국면에서 정부와 관치금융이 시차로 인하여 충분한 대응을 하지 못한 (오히려 긴축정책을 쓴) 결과, 경착륙을 넘어 경기후퇴의 장기화가 이어졌다고 요약할 수 있을 듯 싶네요.
  • Orca 2014/01/21 21:15 #

    저도 번역하다 보니 97년 아시아 외환위기도 포함해서 참 어쩌면 이렇게 겹칠 수 있는지 타이밍이 절묘한 부분도 있더군요...ㅎㅎㅎ

    그래도 근본적인 원인은 전 포스팅에 언급한대로 당시 상황을 오판한 것에 있지않나 합니다. 물론 당시 상황에서 그걸 파악하고 정책을 결정한다는건 결코 쉽지않은 일이죠...^^
  • Moment 2014/01/26 22:01 # 삭제 답글

    버블붕괴-아시아 금융위기로 이어지는
    대장성 대포팔작전 서두로군요...
    진짜 쟤네도 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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