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1/08 17:39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④ 엔고가 유익하다고 착각한 이유 Business


오후들어 날씨가 다시 쌀쌀해지네요.

이전에 작성했던 포스팅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① 서론 및 장기정체기의 관찰'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② 디플레이션과 유동성 함정'
'버블-디플레 기간 일본의 금융정책 - ③ 개방경제에서 환율의 의미'

에 이어서 이번에는 왜 일본은 상당한 기간동안 엔고를 유익한 것으로 착각해 왔는지 그 이유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는 부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Ⅵ. 엔고를 유익한 것으로 착각한 이유 - 플라자 합의 이후의 경기확대



일본 정부의 공식 경기순환표에 의하면, 플라자 합의 직전인 85년 7월 부터 시작된 경기후퇴는 86년 11월에 저점을 기록하고, 그후 51개월에 달하는 장기 경기확대가 시작되었다. 플라자 합의에 의한 엔고가 「과도」한 엔고로, 90년대 장기정체의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어째서 과도한 엔고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경기확대가 일어났는가?라는 수수께끼에 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질문에 대한 우리들의 답변은 플라자 합의와 같은 시기에 발생했던 교역조건의 극적인 개선이다.

1980년대 초기에 일어난 제2차 석유파동에의해 폭등했던 원유가격은, 그 이후 완만하게 하락했지만, 1980년대 중엽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산유국의 카르텔에의해 인위적으로 유지되고 있던 높은 가격은, 필연적으로 세계경제의 저성장을 초래하여 원유수요 자체의 증가를 억제했다. 또한 원유 가격이 높은 결과로 북해 유전 등 카르텔 외 유전 개발을 촉진하는 한편, 에너지 절약 기술의 촉진을 일으키는 원인이되었다. 그 결과, 원유 수입의 침체가 OPEC 회원국 간의 이해 대립을 초래, 결국 산유국 카르텔의 구속력을 저하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밑바탕으로, 1986년 초에는 원유가격의 극적인 하락이 일어나게 되었다. 원유가격의 급락은 밀접한 대체관계에 있던 다른 에너지 자원의 가격도 마찬가지로 하락시키게 되었다는건 말할 것도 없다.


그림 13. 광물성 연료(원유, 석탄, 천연가스) 수입액의 GDP 비중

거의 전부의 에너지를 수입자원에 의존하고 있는 일본으로서는, 이 에너지 가격의 대폭 하락은, 교역조건(수출가격/수입가격의 비율)을 극적으로 개선하게된 것이다. 제2차 석유파동 시점에는, 일본의 명목 GDP 대비 에너지 수입금액은 8%를 초과했지만, 플라자 합의에 의한 엔고와 달러표시 에너지 가격의 하락이 동시에 발생, 엔화로 측정된 에너지 수입대금은 급감하여, 그 비율은 87년이 되면 1%대 까지 하락하고 말았다. 다른 수입재와 달리, 일본에 있어서 에너지는 국내에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생산활동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수입은 피할 수 없는 비용(cost)이다.

그 수입가격 비용이 극적으로 하락했다는 것은, 산유국으로부터 일본으로 대규모 소득이전이 발생했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플라자 합의 이후 실질환율의 과도한 상승이 지니고 있던 경제에 대한 마이너스(-) 효과는, 교역조건의 개선에의해 상쇄되었다. 이것이 당시 엔고에도 불구하고, 그 후의 경기확대를 불러온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기업의 상황을 관찰하면, 당연하지만 수출산업과 수입 경쟁 산업은 커다란 타격을 받았지만, 소위 내수형 산업(그 대부분은 비제조업)이라고 하는 분야에서는 에너지 비용의 급격한 하락과 생산물 가격의 하방 경직성이 동시에 작용하여, 실질 생산량은 커다란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명목 부가가치 생산액, 특히 기업수익의 급격한 증가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이러한 기업수익의 증가가, 비제조업에의해 대표되는 내수부문 설비투자의 증가를 야기하여, 경기를 급속히 확대시켰던 것이다.

물론, 엔화표시 에너지 가격의 급락은, 에너지 시장의 수급관계와 환율의 큰 폭의 엔고 추이로 인한 결과로인해 발생한 현상으로, 내수산업 또는 비제조업의 획기적인 기술진보라는 구조적인 원인으로 발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달러표시 에너지 가격과 환율이 변화한다면 용이하게 변동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현상은, 두 번의 석유파동 이후 진전된 에너지 효율개선 노력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라고 해석되어,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구조변화라고 인색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 내수관련 또는 비제조업에서 발생했던 것은 단기적 수익개선 만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장래의 예상수익율을 더욱 대폭으로 인상하는 것이 되었다. 단적으로 말하면, 일시적인 비제조업의 수익확대가 구조적이고 항구적인 것으로 오인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저금리 정책과 그것의 지속 예상과 함께 「엔고 상황 아래 내수주도에 의한 경기확대」를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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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셨나요?

오늘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에는 일본의 버블 붕괴와 그후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는 시기를 살펴보는 부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문헌]

岡田靖, 浜田宏一 (2009), "バブルデフレ期の日本の金融政策", 内閣府 経済社会総合研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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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지나가다 2014/01/08 17:41 # 삭제 답글

    상당히 오랜만에 쓰셨내요...
  • Orca 2014/01/08 17:47 #

    예 요즘 바쁜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요...3편은 저번 주에 썼고, 오늘은 4편 입니다...ㅎㅎㅎ
  • 일화 2014/01/08 19:04 # 답글

    국가 규모의 거대한 착시현상이 있었던 거로군요.
    혹시 일본의 내수산업 비중이 큰 것도 저 때부터인가요?
  • Orca 2014/01/08 19:12 #

    음 그럼 8,9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시계열 데이터를 뽑아야 하는데, 제가 지금은 불가능 하네요.

    일화님도 아시다 시피 일본은 내수시장도 크도 잘 발달한 편이라 무역 의존도는 우리나라의 1/2~1/3 수준이죠. 그래서 더욱 저런 착시 현상이 강했는지도 모릅니다...^^ 해당 자료는 아래 참조해주세요.

    https://www.google.co.kr/url?sa=t&rct=j&q=&esrc=s&source=web&cd=1&ved=0CDIQFjAA&url=http%3A%2F%2Fwww.kjc.or.kr%2Fcms%2Fboard%2Fdownload.php%3Fbid%3Djapankreport%26no%3D32061%26p_file%3Dp_file0&ei=wiPNUufRJKGAiQexy4DADA&usg=AFQjCNFv2IACZn4SvOA9PPnXex6JeBON1A&sig2=ARnT6BNlgdbZA56IbqnCxg&bvm=bv.58187178,d.aGc&cad=rja
  • 골든 리트리버 2014/01/08 22:11 #

    일본의 GDP대비 최종소비지출 비중이나 민간 최종소비지출 비중 모두 버블 경기 때는 하락했습니다.

    오히려 1970-83년과 91년 이후 대세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습니다.

    다만 일본의 무역 의존도는 1984-88년 사이에 26.8에서 16.4로 빠른 하락을 보여주는데, 그 이전에도 무역 의존도 자체는 선진국 중 미국 다음으로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무역 의존도 하락에는 본문에서 설명한 에너지 수입 비용 하락이 기여한 비중이 높지요.
  • 일화 2014/01/08 22:25 #

    두분 모두 답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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