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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록이 시작되었을 때 나타난 성(城) 그리고 공성전의 모습

 

저번에 제가 방문한 성 몇군데를 중심으로 포스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풍경사진 중심으로 올린 것 같아서 제딴에는 다소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기초부터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Castles' 카테고리를 신설해서 시작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포스팅으로 문명의 발생과 함께 역사기록이 시작될 때 나타난 성과 공성전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할까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 아시리아 부조의 이미지는 가로 폭 2048 픽셀로 조정되었으며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 드리고 싶은 점은 성 이라는 방어시설과 이것을 무너뜨리기 위한 공성전의 기술은 역사기록이 시작된 시점에 이미 거의 완벽하게 완성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불행히도 인류가 집단 취락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주변 집단과의 잦은 무력충돌이 있었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 유적에서도 목책 등의 방어시설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기도 하고요.

처음으로 기록에 남겨진 성곽 또는 도시의 방어시설은 헤로도토스, 크테시아스, 스트라보 등의 그리스 역사가들의 묘사를 통해서 그 윤곽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기원전 600년 경에 증축을 완료한 고대 바빌론의 성곽을 묘사했습니다.

도시와 왕궁을 둘러싼 2~3중의 성벽, 성벽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건설된 탑, 그리고 두개의 돌출된 탑에 의해 굳건히 방어되는 성의 출입구에 대한 기록을 보면 화약의 발견으로 인한 화포의 사용이 일반화되기 전 중세시대 성의 방어구조와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그리고 트로이, 미케네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발견도 이시기에 이미 성이란 방어시설은 개념상 거의 완성단계에 있었다는 사실을 뒷 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적이란 일종의 화석화된 흔적이며, 문자로 기록된 묘사는 비록 아무리 충실해도 시각화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고대인들도 자신들의 성과 이와 관련된 전투기록을 마치 현대 군대잡지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묘사하듯이 당시에 가능했던 방법으로 자세히 남겨놓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우리는 당시의 성과 이를 둘러싼 전투의 모습을 어느정도 생생하게 엿보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자 먼저 기원전 1280년 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람세스 2세의
장례전 라메세움(Ramesseum)에 묘사된 이집트 군에 의한 히타이트인의 도시 다푸르(Dapur)에 대한 공격장면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음, 그런데 돌에 부조된 것이라 뚜렷하게 안 보일 수도 있을 것 같군요. 이를 그림으로 바꿔서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먼저 성을 살펴보면 외곽의 성벽이 있고 그 안에는 다시 정사각형의 내성이 있는 2중 성곽 구조입니다. 왼쪽하단에 묘사된 것은 외성 출입구를 방어하는 탑으로 보입니다. 아마 출입구 양쪽에 세워져서 돌입하는 적군들에게 협공을 가했을 것입니다. 히타이트인들은 성벽과 탑위에서 화살을 쏘거나 돌을 굴리면서 이집트군을 저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한편 이집트 병사들은 긴 방패로 몸을 가린채 사다리를 타고 성벽위를 올라가고 있습니다. 성벽에 매달리거나, 완강한 방어에 못버티고 아래로 떨어지는 이집트 병사들도 보이는 것 같군요.


자, 그럼 시간을 좀더 타고 내려가 기원전 800년경 아시리아 인들이 남긴 기록을 한 번 보도록 합시다.


머, 일부 역사교과서에도 실려있는 유명한 장면이기도 합니다. 오른쪽에서는 동료의 방패에 몸을 가린 궁수들이 화살을 날리고 있고, 왼쪽에서는 성문쪽의 타워를 충각이 달린 공성차가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성차의 위에서는 역시 동료의 방패 뒤에서 열심히 화살을 쏘려하는 궁수가 묘사되고 있고, 방어하는 측도 열심히 탑위에서 화살을 날려 이들을 저지하려고 합니다.

공성차의 충각에 의해서 성벽의 일부가 파손되는 상황도 묘사되어있군요. 당시 중동지역의 성벽은 마른 진흙을 불에구운 벽돌을 주재료로 사용했을테니 저런 공격에 더 취약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충각은 나무로 만들고 앞 부분은 쇠를 덧씌워서 보강을 했을 것입니다.

이 부조에서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아시리아군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가운데의 궁수는 역시 옆의 동료가 들고있는 대형의 방패에 의해서 방호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벽에 근접해서 사격을 하는 궁수들은 방패수(?)들과 협동으로 행동하는 것이 당시에 일반적이었던 것 같군요.

이렇게 대형방패를 이용한 임시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그 뒤에서 안전하게 성에 사격을 가하는 전술도 이미 이당시에 확립된 상태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는 대형 방패수 1인 + 궁수 2인의 조합이네요.

그리고 성벽이 너무 높거나, 지형적 장애물이 있으면 그때도 이렇게 경사로를 만들어서 그것을 극복했군요...^^


자, 그럼 이것과 비슷하지만 제가 보기엔 조금 더 극적인 공성전의 장면을 한 번 더 보도록 할까요? 역시 아시리아인들이 남긴 부조의 한 장면입니다.


조금 복잡할 수가 있으니 좀 나누어서 여기에 묘사된 상황을 살펴보도록 할까요?


1번에 묘사된 것은 두명의 아시리아 병사가 지렛대와 끌을 사용해서 성벽의 기초 부분을 허물어뜨리려고 하는 장면입니다. 이른바 전투공병의 시초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확대해서 보면 이렇습니다. 묘사가 상당히 리얼하죠?...^^
 

다음 장면인 2,3,4번은 한데 섞여있기는 하지만 아주 급박한 상황을 잘 묘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아시리아인들의 공성차가 성벽을 충각을 이용해서 공격하는 장면입니다. 그러자 2번처럼 성벽위의 수비병들이 체인을 밑으로 늘어뜨려 충각을 감아버린 다음에 위로 끌어올려서 이를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다시 3번 처럼 아시리아 병사 2명이 튀어나와 갈고리 같은 도구를 사용해서 필사적으로 이 체인을 충각에서 제거하려 하고 있습니다.

한편 4번 에서 성벽위의 방어군들은 불길 같은게 묘사된 걸로 보아 인화물질 혹은 횃불로 보이는 것을 밑으로 던져서 아래의 아시리아 병사들과 공성차를 태워버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해서 아시리아인들의 공성차 꼭대기에서는 파이프를 통해서 물을 부어 화공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생생한 묘사이지 않습니까?


그럼 다음에는 이런 부분부분의 전투 모습이 아닌 공성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기록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역시 아시리아인들이 기원전 700년경에 감행한 라기스(Lachish) 공성전의 모습입니다.

아시리아인들의 부조를 통해서 재구성한 모습인데, 당시 공성전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같습니다.

1. 성벽까지 건설된 경사로를 통해서 공성차들이 선두에서서 성벽과 탑들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2. 그 바로 뒤에는 긴 방패에 몸을 숨긴 궁수들이 활로 엄호사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3. 투석병들도 슬링(sling)을 사용해서 열심히 성벽을 향해 돌을 날리고 있습니다.
4. 성안에 있는 사람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기 위해서 포로들을 말뚝위에 박아서 처형시키고 있습니다.
5. 성벽위의 방어군도 활, 돌멩이, 횃불들을 공격군을 향해 발사하면서 열심히 싸우고 있습니다.
6. 방어에 별 도움이 안되고 식량을 소모시키는 노약자, 여자, 어린이 들이 빠져나오고 있는 모습입니다. 완전히 포위된 상태로 보이니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됬을까요?

이들이 부조에 묘사된 모습을 한 번 살펴봅시다.

동료의 긴 방패에 방호된 상태로 사격을 하는 궁수들.....

슬링을 사용하는 투석병들의 모습...

성을 빠져나오는 노약자와 여자, 어린이들... 그 옆의 경사로에서는 공성차를 선두로 아시리아군이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경사로를 통해 공성차를 앞세우고 진격하는 아시리아군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묘사된 부조...성벽위에서는 돌과 횃불이 매우 치열하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방패와 창을 들고 경사로로 진입하는 아시리아의 용감한 병사들.....

경사로 근처 후방에서 화살과 돌을 빗발치듯 쏘아대서 아군을 원호하고 있는 아시리아의 궁수와 투석병들...

후방에서 대기하며 투입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아시리아 예비대의 모습입니다.....



자, 여기까지 보셨으면 인류의 문명이 시작되고 역사의 기록이 시작된 시점에 이미 성과 공성전의 모습은 틀을 거의 완전히 갖추었다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인류에게는 불행이었겠지만 집단 취락생활을 시작한 이후 각 집단간의 무력충돌은 상당히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이에 대한 방어 또는 이 방어를 무너뜨리는 수단에 집단의 생존이 달려있는 상황에서는 이에 관련된 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성과 공성전의 모습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화포의 출현 이전까지는 시대별 혹은 지역별로 그 기본적인 틀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문화적 특성, 사용가능한 재료 등으로 인한 다소의 차이와 함께 근본적인 변화까지는 아니어도 지속적으로 세세한 부분의 개선은 이루어 지기도 합니다.

저같은 취미생활자에게는 이런 사소한 부분의 변화와 여러 발전 모습도 꽤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될 것도 같습니다. 머 저도 앞으로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고, 생업이 있는지라 정기적인 포스팅도 가능할 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시작을 해보려고 하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지켜봐주세요...^^


[이미지 출처]

아시리아 부조 : 대영박물관 방문時 촬영
그外 : 이미지 하단에 표시


[참조자료]

Sidney Toy, Castles - Their Constructon and History, Dover, 1~15p

by Orca | 2009/10/18 14:13 | Castles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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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젊은태양 at 2009/10/18 15:08
공성전이 시작된 시기부터 이미 쌍방간 일시적인 휴전을 통해 성내 비전투원을 피난시키는 사례는 많았나보군요....쩝
Commented by Orca at 2009/10/20 07:46
예...그리고 저 상황에 대해서 더 자세한 설명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기억이 안나는 군요...-_-;;
Commented by 勇者皇帝東方不敗 at 2009/10/18 16:27
생각있는 지휘관이였다면 피차 점령지의 백성이 필요할테니 전부 죽이진 않았겠지요..;
Commented by Orca at 2009/10/20 07:46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Commented by 뚱띠이 at 2009/10/18 17:10
저런 공성전을 본다면 대포의 발명이 얼마나 고마웠을지 알만하군요
Commented by Orca at 2009/10/20 07:47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겠죠...^^

그래도 대포가 나온 이후에도 성과 대포는 한동안 경쟁을 하기는 하지만 결국은 화포의 승리...!
Commented by 함부르거 at 2009/10/19 03:40
저도 대영박물관에서 저 부조를 보고 꽤 놀랐었지요.
이미 기원전 800년에 중세까지도 사용되는 거의 모든 공성전술이 등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Commented by Orca at 2009/10/20 07:48
그러게요...그 전에 얼마나 피터지게 싸우며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를 쌓았으면...-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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