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9월 20일
Flak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요즘은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포스팅이라고 해봤자 YouTube 동영상 퍼오는 정도였습니다.
오랜만에 간단하게 독일의 대공포 Flak에 대한 이야기나 한 번 해보죠...ㅎㅎㅎ
다음에는 일시 중단된 독소전 연재도 진행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에니웨이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주세요...^^
몽골피에 형제가 1783년 열기구를 하늘에 띄우면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군사적으로 활용도가 높은 물건이 생겼다는 생각이 곧 여러사람들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높은 곳에서 관측을 하면 더 멀리 내다볼 수 있고, 그러면 적진의 상황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정보자산으로 활용가능하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명확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각국의 군대들은 이런저런 기구를 하늘에 띄우기 시작했고, 이걸 본 적군은 자기가 가진 무기를 활용해서 이 기구를 잡으려고 사격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공중에 있는 목표를 잡기위한 전용무기란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1870년 보볼전쟁이 발발하고, 프로이센 군이 프랑스의 수도 파리를 포위하자 파리의 우정국은 석탄가스를 채운 기구를 이용해서 외부와의 통신을 유지하자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비록 그 운송량은 미미하지만 우편물 뿐만 아니라 고위인사 들도 기구를 타고 탈출하는 상황이 이어지자 프로이센도 이들 좌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전통의 무기제조사 크루프(Krupp)에서는 이 기구를 잡기위한 전용 무기를 제안하는데, 이는 Balonabwehrkanone를 축약한 BAK라고 불리워 졌습니다. 독일식 조어를 아시면 이 무기의 뜻은 명확하죠. Balon(풍선 즉, 기구) + abwehr(대항하는) + kanone (포 즉, 캐논)이니 아마 이것이 최초의 전용 대공병기일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때 부터 대공병기의 기동성이 강조 되었다는 것입니다. 말이 끄는 수레에 바로 장착되어 360도 선회 고각사격을 할 수 있는 이 무기는 파리에서 기구가 뜰 조짐이 보이면 그 장소로 마치 소방차가 출동하듯이 달려가 탈출을 시도하는 기구에 사격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이 때 이 무기가 경험하게될 여러가지 난점은 후에 대공사격이란 과제가 경험하게 될 애로사항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 최초의 BAK의 조준장치는 일반 소총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비록 느리긴하지만 3차원 공간을 움직이는 물체에 대한 거리 측정과 예측 지점에 대한 사격을 실시할 수 없었습니다.
- 탄환역시 단순한 납덩어리 였을 뿐으로 사수가 사격을 실시한 후 탄도의 궤적을 확인할 수 없었고, 따라서 조준의 수정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한마디로 감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지상에서의 위협을 감지한 프랑스인들이 기구를 야간에 띄우기 시작하자 BAK는 곧 무력화되었고, 다음해 1월 파리가 항복을 선언하면서 최초의 BAK도 당분간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방식의 기구들은 관측을 위한 장비로 각국의 군대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병기의 필요성도 점점 높아졌습니다.

1909년 5월 독일 육군은 견인되어 이동하는 기구에 대한 사격실험을 실시하였습니다.
첫번째로는 보병들의 마우저 라이플로 4,800발을 사격했으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두번째로 맥심 기관총을 사용하여 2,700발을 사격하였으나 기구는 여전히 하늘에 떠 있었습니다. 지상으로 표적이 된 기구를 내려서 조사해보니 76개의 구멍이 있었지만 기구는 여전히 비행가능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즉, 천으로 된 조직을 단순히 뚫고 지나가는 소화기 탄약은 효과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게다가 기구의 뒤를 이어 대형 비행선이 개발되고, 미국 라이트 형제가 공기보다 무거워도 동력 비행이 가능한 비행기를 개발하자, 하늘로 부터의 위협은 점점 증가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여 190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 독일의 크루프(Krupp)사와 에르하르트(Ehrhardt)사는 공중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포 - 여전히 BAK라고 불리웠습니다 - 를 출품합니다.
먼저 크루프의 65mm 구경의 대공포는 4kg 짜리 탄환을 고도 5,500 미터 까지 쏘아올릴 수 있었고, 지상에서 360도 선회가 가능할 수 있도록 독특한 포가 구조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한편으로 크루프의 75mm 와 에르하르트의 50mm 대공포는 더 혁신적 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트럭의 뒤에 탑재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차량은 소화기의 사격에 견딜 수 있도록 장갑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다소 럭셔리한 디자인은 일부 군 관계자들로 부터 너무 오버 스펙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옇든 이런식으로 군 관계자들로 부터 여러 관심을 받기는 했지만, 아직 대공포라는 것은 아직 예산배정의 우선순위에서는 다소 밀려나 있었고, 결과적으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당시 독일은 6문의 차량화 대공포와 12문의 마필로 견인되는 대공포를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막상 발발하자, 연합군의 공중활동은 예상보다 활발했습니다. 이미 1914년 가을에 영국 해군 소속의 항공기들은 독일 국내의 목표(주로 제펠린 비행선 기지)에 대한 폭격을 실시했고, 1914년 12월에는 독일의 도시 프라이부르크에 대한 폭격이 실시되었습니다. 비록 물리적인 피해는 미미했지만 독일의 상공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하늘에서 뚝딱하고 대공포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 일단 독일은 대량으로 노획한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의 야포 약 1,000문을 자국의 대공방어에 투입하기로 결심합니다. 특히 다수가 노획된 러시아의 76mm 야포, M1903은 605 미터/초 의 포구 초속도로 6.55 kg의 유산탄을 발사하는 제법 쓸만한 포였습니다.
독일은 이 포를 7.62cm Russische Sockellafette Fliegerabwehrkanone 라고 명명했고, 특히 뒤의 Fliegerabwehrkanone 즉, Flieger (비행물체에) + abwehr (대항하는) + kanone (포, 즉 캐논) 이라는 독일식 조어는 곧 Flak이라는 약어로 불리웠으며 이는 나중에 대공포를 지칭하는 이른바 'Flak'의 유래가 됩니다.
임시방편으로 노획된 야포를 대공방어에 투입하기는 했지만, 자국의 상공을 방어하기 위한 전용 대공포의 필요성은 점점 높아만 갔고 일부 독일육군의 다양한 야포들도 일단 하늘을 향해 발사할 수 있게 개조하여 대공방어 임무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전용 대공포와 관련된 장비의 개발도 시급한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독일의 대공포 개발은 크게 2개의 분기점으로 나뉘어 지게 됩니다. 그 첫번째는 육군의 77mm 야포와 동일한 구경의 대공포입니다. 머 이왕 사용하고 있는 치수를 바탕으로 개발 및 생산을 하는게 아무래도 편하기는 하겠죠.

하지만 이 77mm 대공포는 장갑 차량화 버젼도 생산되었고, 이들은 대공 목표에 대한 사격 뿐 만 아니라 1918년에 벌어질 연합군의 전차를 사용한 공격에도 유효한 방어수단임을 증명합니다.



한 편 다음 전쟁에 더 유명세를 떨칠 또 하나의 개발 라인은 88mm 구경의 대공포 였습니다. 어떤 분들은 왜 88mm란 이상한 구경이 채택되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88mm는 인치로 환산하면 3.5인치 정도로 사실 독일 해군에서는 1890년대 에도 사용된 구경입니다.
전노급 전함시대 당시로서는 신무기였던 어뢰로 일격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고속어뢰정은 해군 주력함에 중요한 위협이었으며, 따라서 해군 함정에는 이러한 어뢰정에 대항하기 위한 포를 장비하고 있었습니다.

또 생각해보면 이러한 포들은 고속으로 이동하는 목표를 상대하는 것이 목적이니, 비행기를 상대하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었고, 실제로 최초의 대공포 부대가 창설될 때 고속 목표에 대한 예측 사격을 실시하는 경험이 있는 유일한 부대인 이러한 해군 함정의 승무원들과 해안 방어포대의 부대원들은 일정 부분 노하우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에니웨이 이런 해군의 포를 기반으로 크루프사는 1918년에 88mm 45 구경장 대공포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단, 이 포는 2차 세계대전의 독일의 Flak 18, 36, 37, 41 등 과는 구경만 같다고 생각하시는게 좋습니다. 이 포는 독일내의 주요 군사목표와 산업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배치되었고, 빠른 포구초속도, 대형화된 포탄, 그리고 기계식 시한 신관을 장착할 수 있어 호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기계식 시한 신관이 언급된 이유는 기존의 시한 신관은 화약의 연소를 통하여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이었는데, 항공기의 비행 고도가 점점 상승하게 되자 기압의 차이로 인한 연소시간의 변화로 정확한 타이밍을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연합군의 항공기들은 점점 강화되는 독일의 방공포 부대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야간에 침투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도, 2차 세계대전의 야간 폭격작전에 대응하기 위한 지상 대공포 부대의 여러 문제점이 부각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어떻게 적기의 위치를 파악하느냐 였습니다. 물론 서치라이트가 배치되었지만 이것도 어느 정도 조기 경보가 이루어지고 대략적인 방위는 나와야 더욱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당시의 기술로서는 음향 탐지기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음향 탐지기는 자체적인 한계점이 있었을 뿐 만 아니라, 생사가 걸린지라 어떤 짓도 불사하는게 전쟁이다 보니 연합군의 조종사들은 엔진 피치수를 조절하여 지상의 음향탐지를 통한 거리 및 기체 종류 판단에 혼란을 준다든지, 아예 본격적으로 막장스럽게 엔진을 꺼버리고 활강을 통해 접근하는 짓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항공이라는 새로운 분야에서 이런저런 초창기의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대공포 'Flak'은 여러가지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1,588대의 연합군 항공기를 격추 시켰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함께 독일은 일부 요새지역을 제외하고는 대공포를 보유하는 것이 금지되며 'Flak'의 이야기의 한 장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쓰다보니 두서없게 길어졌네요. 2차 세계대전의 Flak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한 여러 소재가 있을테지만 일단 다음기회로 미루고 여기서 일단 줄이겠습니다...^^;;
[ 참조자료 ]
Edward B. Westermann, Flak German Anti-aircraft defences 1941~1945, Kansas, 9~28 page
Ian V. Hogg, Anti-Aircraft Artillery, Crowood, 9~39 page
# by | 2009/09/20 17:40 | DC 밀갤 및 기타 | 트랙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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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괴한 연상작용
Flak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 1차대전의 대공포에 관해 범고래님이 좋은 글을 올려주셨다. 그런데 대공포 사진을 보다보니..... 갑자기 채플린의 영상이 떠올랐다. 위대한 독재자의 한장면.... 5분정도부터 나온다.... 난 왠지 이런 영화가 좋다.... 오덕은 어쩔 수 없는 듯.......more
당시의 급박한 필요와 그에 반하는 공급량의 현실을 알 수 있겠군요.
(그런데 장전수는 장전할 때 마다 욕짓거리를 한바탕 했을 듯)
오늘도 잘 보고 갑니다
대공포 소리가 "액액"하고 들리는 모양이지요..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말씀데로 일본이 37년 남경에서 크루프사의 고사포 16문을 노획해서 그걸 카피한게 맞기는 한데...
Flak 18 과는 구경장이 틀리고(L56 vs L45) 제 포스팅에 있는 45구경장 88mm는 포신 상하에 주퇴 및 복좌기가 달려있는데 99식 8미 고사포는 포신 위에만 붙어있고 말이죠...
정확한 오리지널 모델과 개조(?) 과정이 먼지는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약실규격과 탄의 크기가 좀더 일치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