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14일
Ukraine, June 1941 - 키예프 특별 군관구의 전투 태세
전 포스팅에서 간략히 살펴본 개전전 소련측의 상황에 이어서 이번에는 다시 본 연재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키예프 특별 군관구(Киевский военный округ)의 전투 태세를 전투서열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그들은 어느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걸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키예프 특별 군관구는 소련의 서부 국경중 약 600 마일에 이르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된 지역은 고대 우크라이나의 도시였으며, 폴란드의 분할점령으로 획득한 르부프(Lwów)를 중심으로 한 돌출부였다. 이 지역에서 남서쪽으로 진출하면 바로 루마니아의 플로에슈티(Ploeşti) 유전지대를 위협할 수 있었으며, 북서쪽으로 진출하면 독일이 분할점령한 폴란드의 남쪽 측면을 파고 들 수 있었다.
따라서 소련의 키예프 특별 군관구는 르부프(Lwów) 주변에 대규모의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고, 이는 소련의 독일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종종 인용되고는 한다. 하지만 비록 소련이 독일을 선제공격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해도, 그 시기는 1941년 6월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탈린이 그 당시 가장 절실히 원한것도 바로 자신들의 군사력을 재정비 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일단 독소전 이전 소련의 방어 전략의 핵심은 서부 국경선을 따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요새화시킨 '스탈린 라인' 이라고 불리우는 요새선 이었다. 이 방어선은 1939년 후반까지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여 거의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1939년 이후 발트 3국, 핀란드, 그리고 폴란드로 영토를 급격히 확장함에 따라 이 요새선은 이제 소련의 새로운 국경선에서 거의 200마일 후방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소련은 '몰로토브 라인'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요새선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요새지대의 방어 거점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집중되기 보다는 국경선을 따라 균등하게 분포하였으며, 설상 가상으로 독소전 개전 이전까지 그 건설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인민 국방 위원회(NKO, Narodnyi Kommissariat Oborony)는 1941년 5월 21일 서부 국경의 요새지대가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으나, 독소전 당시 완전히 장비된 요새지역은 단 한개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키예프 특별 군관구는 제 5, 6, 12, 26군과 군관구 직속예비를 포함, 61개 사단(16개 전차사단, 33개 소총사단, 8개 차량화 보병사단 및 8개 항공사단 등)를 보유한 소련의 군관구 중에서도 최상의 전력을 갖춘 군관구였으며, 보유 기갑세력도 전차 4,500 여대 장갑차 1,000 여대에 달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45mm 내지는 76mm 구경의 포를 장착하고 있어 독일 전차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위 전투서열에 나온 부대들 중 독소전 초기 남부지역의 최대 격전인 두브노-루츠크-브로듸(Дубно-Луцк-Броды) 삼각 지역 전투의 핵심 부대인 제 8, 9, 15, 19, 22 기갑군단(위 전투서열 중 푸른색으로 표시)의 전력을 순서대로 살펴보도록 하자.
제8 기계화군단
제 26군 소속의 제8 기계화군단은 가장 강력한 소련 기계화군단 중의 하나로 85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신규 배치된 100 대의 T-34와 70 여대의 KV-1 전차는 이 군단의 핵심전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유 전차 중 대다수는 구식의 T-26 및 BT 전차였다.

제9 기계화군단
군관구 직속 예비인 제9 기계화군단은 1940년 11월 창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군대중 최약체의 기계화군단 이었다. 군단 지휘관인 로코소브스키(K. K. Rokossovskiy) 소장은 NKVD의 감옥에 수감되어있다가 최근에 풀려난 상태였으며, 그의 기계화 군단이 보유한 전차 300 여대 중 T-34와 같은 신형 전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게다가 T-26 전차 중 79대는 45mm 전차포로 무장하고 있었으나, 기관총만을 장착한 모델도 40 대에 달했으며 특히 10여대는 비무장으로 견인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로코소브스키(K. K. Rokossovskiy) 소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당시상황을 설명했다.
제15 기계화군단
이 군단은 국경선 근처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1941년 3월에 창설되었다. 전력은 비교적 충실한 상태로 KV-1 전차 74대 및 T-34 전차 72대를 포함한 70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독소전 불과 몇개월 전에 창설된 이 군단의 문제는 바로 인력이었다. 타 부대로 부터 전출된 인력과 예비역의 소집에도 불구하고 승인된 인력의 70% 만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전차사단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전력에 대하여 강한 자신감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19 기계화군단
역시 군관구 직속 예비인 제19기계화군단은 제9 기계화군단과 마찬가지로 다른 기계화군단에 비하여 약체로 45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대의 약점은 차량 운송수단의 부족이었다. 이로 인해 개전 당시 차량들은 보급품을 우선적으로 운송해야 했으며, 따라서 차량화 보병사단의 병사들은 도보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화포의 견인 수단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22 기계화군단
제5군에 배속되어 국경 근처에 배치된 이 군단은 70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31대의 KV-2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잘 만 사용되면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을 KV-2 전차였지만 이들은 개전 불과 6일 전에 부대에 도착했다. 한마디로 승무원들이 이 전차의 조작법을 숙지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KV-2 전차를 수령하는 순간 이 부대원들은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50톤에 육박하는 이 전차가 기동 중 고장이라도 난다면 견인할 수 있는 수단이 자신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1 대전차포 여단
비록 기계화군단은 아니지만 군관구 직속 예비였던 이 부대는 48문의 76mm 포와 72문의 85mm 포를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견인할 수 있는 차량을 완비한 유일한 대전차포 여단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부대는 후일 기민한 기동을 통하여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음 비록 구식화되었고, 지휘 통제 수단이 효율적이지 못한 문제가 있었지만 정말 규모 하나는 엄청나군요.
자, 그럼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에는 독소전 개전 직전 며칠간, 키예프 군관구와 모스크바에서 급박히 돌아갔던 상황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참조자료]
The Bloody Triangle: The Defeat of Soviet Armor in the Ukraine, June 1941, Victor Kamenir, 29~50 p
과연 그들은 어느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걸까요?
궁금하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위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키예프 특별 군관구는 소련의 서부 국경중 약 600 마일에 이르는 부분을 담당하고 있었다. 특히 중요하게 생각된 지역은 고대 우크라이나의 도시였으며, 폴란드의 분할점령으로 획득한 르부프(Lwów)를 중심으로 한 돌출부였다. 이 지역에서 남서쪽으로 진출하면 바로 루마니아의 플로에슈티(Ploeşti) 유전지대를 위협할 수 있었으며, 북서쪽으로 진출하면 독일이 분할점령한 폴란드의 남쪽 측면을 파고 들 수 있었다.
따라서 소련의 키예프 특별 군관구는 르부프(Lwów) 주변에 대규모의 병력을 집중하고 있었고, 이는 소련의 독일에 대한 선제공격 가능성에 대한 근거로 종종 인용되고는 한다. 하지만 비록 소련이 독일을 선제공격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고 해도, 그 시기는 1941년 6월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탈린이 그 당시 가장 절실히 원한것도 바로 자신들의 군사력을 재정비 하기 위한 시간이었다.
일단 독소전 이전 소련의 방어 전략의 핵심은 서부 국경선을 따라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요새화시킨 '스탈린 라인' 이라고 불리우는 요새선 이었다. 이 방어선은 1939년 후반까지는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동원하여 거의 완성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1939년 이후 발트 3국, 핀란드, 그리고 폴란드로 영토를 급격히 확장함에 따라 이 요새선은 이제 소련의 새로운 국경선에서 거의 200마일 후방에 위치하게 되었으며, 이에따라 소련은 '몰로토브 라인'이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요새선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새로운 요새지대의 방어 거점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집중되기 보다는 국경선을 따라 균등하게 분포하였으며, 설상 가상으로 독소전 개전 이전까지 그 건설은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인민 국방 위원회(NKO, Narodnyi Kommissariat Oborony)는 1941년 5월 21일 서부 국경의 요새지대가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으나, 독소전 당시 완전히 장비된 요새지역은 단 한개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키예프 특별 군관구는 제 5, 6, 12, 26군과 군관구 직속예비를 포함, 61개 사단(16개 전차사단, 33개 소총사단, 8개 차량화 보병사단 및 8개 항공사단 등)를 보유한 소련의 군관구 중에서도 최상의 전력을 갖춘 군관구였으며, 보유 기갑세력도 전차 4,500 여대 장갑차 1,000 여대에 달하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45mm 내지는 76mm 구경의 포를 장착하고 있어 독일 전차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 키예프 특별 군관구 산하 제 5, 6, 12, 26군의 배치상황 ]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위 전투서열에 나온 부대들 중 독소전 초기 남부지역의 최대 격전인 두브노-루츠크-브로듸(Дубно-Луцк-Броды) 삼각 지역 전투의 핵심 부대인 제 8, 9, 15, 19, 22 기갑군단(위 전투서열 중 푸른색으로 표시)의 전력을 순서대로 살펴보도록 하자.
제8 기계화군단
제 26군 소속의 제8 기계화군단은 가장 강력한 소련 기계화군단 중의 하나로 85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신규 배치된 100 대의 T-34와 70 여대의 KV-1 전차는 이 군단의 핵심전력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보유 전차 중 대다수는 구식의 T-26 및 BT 전차였다.

제9 기계화군단
군관구 직속 예비인 제9 기계화군단은 1940년 11월 창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붉은 군대중 최약체의 기계화군단 이었다. 군단 지휘관인 로코소브스키(K. K. Rokossovskiy) 소장은 NKVD의 감옥에 수감되어있다가 최근에 풀려난 상태였으며, 그의 기계화 군단이 보유한 전차 300 여대 중 T-34와 같은 신형 전차는 단 한 대도 없었다. 게다가 T-26 전차 중 79대는 45mm 전차포로 무장하고 있었으나, 기관총만을 장착한 모델도 40 대에 달했으며 특히 10여대는 비무장으로 견인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로코소브스키(K. K. Rokossovskiy) 소장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당시상황을 설명했다.
- 독소전 개전 당시까지 우리 부대의 인력 편성은 거의 완료되었으나, 전차 및 자동차 같은 주요 장비는 그렇지 못했다. 우리는 편제 및 장비표(TO&E)의 30% 수준의 장비 만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전투용 차량은 노후화 되어 장기간의 작전에는 적합지 않은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제9 기계화군단은 실전에 대비된 상태가 아니었다.
제15 기계화군단
이 군단은 국경선 근처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1941년 3월에 창설되었다. 전력은 비교적 충실한 상태로 KV-1 전차 74대 및 T-34 전차 72대를 포함한 70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독소전 불과 몇개월 전에 창설된 이 군단의 문제는 바로 인력이었다. 타 부대로 부터 전출된 인력과 예비역의 소집에도 불구하고 승인된 인력의 70% 만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전차사단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의 전력에 대하여 강한 자신감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19 기계화군단
역시 군관구 직속 예비인 제19기계화군단은 제9 기계화군단과 마찬가지로 다른 기계화군단에 비하여 약체로 45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부대의 약점은 차량 운송수단의 부족이었다. 이로 인해 개전 당시 차량들은 보급품을 우선적으로 운송해야 했으며, 따라서 차량화 보병사단의 병사들은 도보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화포의 견인 수단도 매우 부족한 상황이었다.
제22 기계화군단
제5군에 배속되어 국경 근처에 배치된 이 군단은 700 여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으며, 특히 31대의 KV-2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

잘 만 사용되면 무서운 위력을 발휘했을 KV-2 전차였지만 이들은 개전 불과 6일 전에 부대에 도착했다. 한마디로 승무원들이 이 전차의 조작법을 숙지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KV-2 전차를 수령하는 순간 이 부대원들은 중대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된다. 50톤에 육박하는 이 전차가 기동 중 고장이라도 난다면 견인할 수 있는 수단이 자신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제1 대전차포 여단
비록 기계화군단은 아니지만 군관구 직속 예비였던 이 부대는 48문의 76mm 포와 72문의 85mm 포를 보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견인할 수 있는 차량을 완비한 유일한 대전차포 여단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부대는 후일 기민한 기동을 통하여 방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음 비록 구식화되었고, 지휘 통제 수단이 효율적이지 못한 문제가 있었지만 정말 규모 하나는 엄청나군요.
자, 그럼 오늘은 여기서 줄이고 다음에는 독소전 개전 직전 며칠간, 키예프 군관구와 모스크바에서 급박히 돌아갔던 상황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참조자료]
The Bloody Triangle: The Defeat of Soviet Armor in the Ukraine, June 1941, Victor Kamenir, 29~50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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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명불허전, 어떻게 하면 욕을 먹는지 통달했다는 느낌!
위의 댓글이 왜이리 웃길까요?ㅋㅋ
그 포포프는 개전당시 아마 레닌그라드 군관구의 지휘관이었을 겁니다.
그래도 이 포포프 아저씨도 나름 두브노 전투에서 기동부대를 이끌고 활약을 한답니다.
좋게 말해서 독일 제11기갑사단의 후방 보급선을 차단했고, 나쁘게 말하면 진격했다가 다른 보병/기갑사단에 포위된채로 며칠간 전투를 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