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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raine, June 1941 - 독일의 계획

 

저번에 연재 계획을 밝혀놓고도 진행된건 하나도 없군요.

사실 제 생각은 독일의 청색작전(Fall Blau) 부터 시작을 하려고 했는데, 거기에 필요한 책인 밑에 요넘이 올해 4월 20일에 출판된 거라 배송이 좀 늦어지고 있습니다...-_-;;


도착하려면 몇 주 더 걸릴것 같은데 그 동안 블로그를 놀려 두기도 뭐하니, 저번에 너무 간략하게 넘어간 독소전 초반 상황을 다시 리뷰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독소전 초반 중에서도 우크라이나에서 T-34, KV 전차를 포함한 전차 3,000여대의 강력한 기갑 세력을 보유하고 있던 소련의 키예프 특별 군관구(Киевский военный округ)가 왜,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궤멸되었으며 독일군의 작전 전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아보면 어떨까요?

주 텍스트로 삼을 자료는 아래의 책입니다.

자! 그럼 일단 시작해 볼까요?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우크라이나로의 침공은 프로이센 출신의 육군원수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Gerd von Rundstedt)가 지휘하는 남부 군집단 (Heeresgruppe Süd)이 담당하기로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아래의 그림은 우리에게 익숙한 바르바로사 작전의 전개 과정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남부 군집단이 담당할 영역만을 한 번 확대해 볼까요?



당시 독일군과 소련군은 분할 점령을 완료한 폴란드에서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소련군의 폴란드 점령지역은 르부프(Lwów)를 중심으로 돌출부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돌출부는 서쪽으로는 헝가리를 위협할 수 있으며, 특히 남쪽으로는 독일의 전쟁수행에 없어서는 안되는 루마니아의 플로에슈티(Ploeşti) 유전지대를 위협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실 독일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원래 계획은 독일이 북익과 남익 양쪽에서 소련의 전선을 돌파, 드네프르 강까지 약 400 마일을 진출하여 여기서 양날의 두 집게가 서로 만나 소련군의 후방을 절단하고 그 안에 있는 소련군을 포위, 섬멸하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계획에서 북익은 제6군, 제17군, 그리고 제1 기갑집단(Panzergruppe 1)으로 구성되며, 남익은 제11군으로 구성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히틀러는 마지막 순간에 앞서 말씀 드렸던 소련의 루마니아의 플로에스티 유전지대로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제 11군을 루마니아 국경지대의 수비를 위해 배치하도록 결정했고, 따라서 독일 남부 군집단의 우크라이나 공세는 북익만으로 이루어 져야만 했습니다.

[ 북익만으로 이루어진 독일 남부 군집단의 공격 계획, ※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


결국 독일의 공격은 먼저 제6군이 소련군 전선에 돌파구를 뚧어 놓으면 제1 기갑집단(Panzergruppe 1)이 그곳을 통하여 소련의 후방으로 진출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으며, 그 전투 서열은 다음과 같습니다. 


[ 남부 군집단, 육군원수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 (Gerd von Rundstedt) ]

[ 제 6 군, 육군원수 발터 폰 라이헤나우 (Walther von Reichenau) ]

[ 제1 기갑집단, 상급대장 에발트 폰 클라이스트 (Ewald von Kleist) ]


한편 남부 군집단은 그 충격력의 대부분을 제1 기갑집단에 소속된 5개 기갑사단(Panzer division)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일 기갑사단은 히틀러의 명령에 의해 그 수를 12개에서 41년 작전전까지 24개로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일의 전차 생산은 이러한 기갑 사단수의 팽창을 따라올 수 없었고, 결국 1940년 2개 전차 연대와 1개 차량화 보병 연대를 보유하고 있던 독일 기갑사단은 41년 1개 전차 연대와 2개 차량화 보병 연대를 보유하도록 편제가 변경되어 사단 당 약 150대 수준의 전차를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크라이나로 침공할 5개 기갑사단도 이러한 수준의 전차를 보유한 상태로 작전을 개시하게 되었으며, 그 총 수는 728대 였습니다.


한편 그들의 앞에는
소련의 키예프 특별 군관구(Киевский военный округ)가 버티고 있었으며, 개전후 3~4일 안에 키예프 특별 군관구 소속의 5개 기계화 군단의 전차 약 2,800여대는 독일군을 저지하기 위해 총출동할 것입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다음 편 에서는 소련군의 개전전 상황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To be continued -


[참조자료]

The Bloody Triangle: The Defeat of Soviet Armor in the Ukraine, June 1941 by Victor Kamenir, 1~8p
 

by Orca | 2009/05/17 15:13 | Советский танк | 트랙백 | 핑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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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의 독일 및 소련의 전투서열을 참조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가능합니다. http://note100.egloos.com/4955513 (독일군 전투서열) http://note100.egloos.com/5002739 (소련군 전투서열 ... more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5/17 16:09
플로에스티→당시의 플로에슈티(Ploeşti). 현재의 플로이에슈티(Ploieşti).

http://en.wikipedia.org/wiki/Ploie%C5%9Fti 참조.
Commented by Orca at 2009/05/17 16:23
오 은근히 와주시길 기대했습니다. 고유 명사는 정말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더군요.

앞으로도 지명등이 계속 나오는지라...^^
Commented by 우마왕 at 2009/05/17 16:10
기갑연대가 아니라 전차연대라고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기갑연대라고 하려면, 그 빌어먹을 기갑여단의 기반이 된, 소위 Schwere Panzer Regiment "Baeke"처럼 지휘부 휘하에 전차부대를 시작으로 기보라던지. 전차를 지원하는 기갑포병 같은 다른 요소들이 있어야 하지 않는가 생각됩니다.
Commented by Orca at 2009/05/17 16:24
그건 그렇군요...영어로는 똑같이 panzer reginment 로 되있는 지라...일단 수정하겠습니다...
Commented by ghistory at 2009/05/17 16:11
르보프→당시의 폴란드어식 지명으로는 르부프(Lwów). 현재의 우크라이나어식 지명은 리비프(L’viv).
Commented by Orca at 2009/05/17 16:24
옙...수정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Commented by 우마왕 at 2009/05/17 16:12
1기갑집단도 서수표현, 즉 제1기갑집단이라 말하는 게 낫지 않나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42년 1월까지 기갑집단들이 모두 기갑군이 될텐데 그때가서 비로소 서수표현이 들어가는 것도 조금 에러지 싶네요
Commented by Orca at 2009/05/17 16:32
음...그렇군요...그런데 이 경우에는 영어에서도 왜 서수표현을 안쓰는지 좀 궁금하네요...
Commented by 우마왕 at 2009/05/17 23:08
당장 저 지도에도 서수표현을 쓰고 있는데요 -ㅅ-;;
Commented by Orca at 2009/05/18 07:44
웁스...그렇네요...책에서는 전부 Panzer group 1 이렇게 표기해 놓아서요...우하하...-_-;;
Commented at 2009/05/17 19: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Orca at 2009/05/17 22:46
무슨 말씀 이신지 잘 모르겠군요...-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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