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4 06:23

日本 육군의 47mm 전차포 Military History

썩소~ 님이 DCinside 2차 세계대전 갤러리에 써 주신 "말레이의 호랑이"라는 글에 편승하여 작성하는 포스팅 입니다.

(관련 링크 =>
http://gall.dcinside.com/list.php?id=worldwar2&no=42418&page=2 )


과연 위 글의 본문에 언급되는 일본 육군의 47mm 전차포는 어떤 물건이었을까요?

관심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 해 주시기 바랍니다.


47mm 전차포는 원래 소련과의 국경 분쟁인 노몬한 전투 이전부터 계획된 것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노몬한 전투에서 보여준 소련 전차포의 위력은 47mm 전차포의 개발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기존의 37mm 전차포는 견인용 대전차포와 탄약의 호환이 안되어 보급상의 애로점도 있었기 때문에 신형 47mm 포는 처음부터 견인용 대전차포(일본 호칭 : 기동 47 미리 대전차포)와 탄약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는 등의 개발 방침이 결정 되었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기동 47 미리 대전차 포와 탄약은 공통화 한다.
 2. 포신은 48 구경장으로 기동 47 미리 대전차 포(53 구경장) 보다 단축시켜 경량화 하는 동시에 주퇴 반동량을 억제한다.
 3. 포탑 대형화를 최소화 하기 위한 고려를 한다.

그리하여 시제품이 제작된 후 1940년 1월 6일 부터 9일간 시험이 실시되었고, 2월의 2차 시험을 거쳐 7월에는 "시제 47미리 전차포 新" 이란 명칭을 부여 받은 다음에 1941년 1월 치바(千葉) 전차학교에서 전차 탑재 적합 판정을 받아 42년 9월에 "1식 47미 전차포"란 명칭으로 제식화 되게 됩니다.

[ 시험용 가대 위에 설치되어 사격 실험 중인 47 미리 전차포 ]

[ 제식화된 1식 47미 전차포, 97식 중전차 치하 改 (チハ改)에 탑재되게 됩니다. ]



그럼 여기서 잠시 일본의 남방작전으로 한 번 눈을 돌려볼까요? 41년 12월 22일 필리핀 루손 섬에 상륙한 95식 경전차 3대는 그날 11시 경,  십 수대의 미군 M3 스튜어트 경전차와 조우하게 됩니다. 일본 전차대는 과감히 돌진 500 미터 거리부터 포문을 열어 미 전차대의 선두 차량에 집중 포하를 퍼부었으나, 명중의 섬광과 연기가 연이어 관측됨에도 불구하고 M3는 전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무슨 러시아 전선의 티거도 아니고...-_-;;) 

도저히 안되겠다 싶은 일본 전차대의 소대장은 자신의 전차로 미 전차 대열의 선두 전차에 몸통 박치기를 할 생각으로 전속 전진 했습니다. 그 순간 M3의 37mm 포탄이 95식 경전차를 관통하였고, 이 전차는 그대로 M3에 정면으로 부딪히며 폭발하였습니다. 그제서야 비로서 미 전차대열의 전진은 멈추었고, 동시에 나머지 일본의 2번, 3번 차량은 측면으로 전개하여 사격을 한 끝에 미군의 전차들을 격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투가 끝나고 조사해 보니 M3의 정면 장갑을 관통한 포탄은 단 한 개도 없는 겁니다. 필리핀에 전개한 일본 육군의 주력 전차는 95식 경전차와 89식 중전차로서 이들은 각각 37mm 포와 57mm 포를 탑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미군이 필리핀 전역에 보유하고 있던 M3 전차는 제192 전차대대와 제194전차대대 소속의 108대 !!! 

[ 위 부터 95식 경전차, 89식 중전차 ]


앞서 전투에서 95식 경전차의 37mm 포는 M3 스튜어트 경전차에 이빨도 안 들어간다는게 드러났으니, 89식 중전차의 57mm 포로는 과연 승산이 있을 지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 육군은 포획한 M3 전차에 대한 97식 중전차 치하(チハ)의 57mm 포의 사격 실험을 버마 랑군에서 42년 4월에 실시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철갑탄을 사용한 300 미터 거리의 사격에서 정면은 물론이요 측면도 관통 불가! 거리를 100~200 미터로 좁혀서 사격을 해보았더니 단독 차량의 사격으로는 효과가 역시 전혀없었고, 측면에 대해서 3~5대의 전차가 각각 10여발의 포탄을 집중 사격한 후에야 겨우 관통.....이 아니라 측면 장갑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97식 중전차 치하에 탑재된 57mm 전차포의 포구 초속은 420 미터/초 로서 89식 중전차 57mm 포의 350 미터 / 초 보다 20% 정도 빠른 전차포 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89식 중전차의 전차포로는 관통불가! 따라서 실험 결과의 교훈을 받아들인 일본 육군 전차대는 M3 전차가 출현하면 재빨리 측면으로 기동하여 소대 내지 중대 규모의 전차가 집중 사격을 실시하는 방법으로 대응했다고 합니다.

(넵 당시 M3는 태평양 전선의 티거 내지는 KV 전차 였던 것입니다.)  

한편 이런 형편이니 당연히 현지 일본 육군은 본국에 47mm 전차포를 장착한 97식 중전차 치하 改 (チハ改)를 시급히 요청하였고, 바탄 반도로 물러나 농성을 벌이고 있는 미군에 공세를 가하기 전 숨을 고르고 있던 일본 육군에 드디어 47mm 포를 장착한 신포탑 치하가 도착을 하였습니다. 과연 고대해왔던 47mm 신포탑 치하(チハ)로는 귀축영미의 M3 스튜어트 경전차를 격퇴할 수 있을 지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일본 육군은 이번에도 역시 사격 실험을 42년 4월 3일 12시 정각에 실시하였습니다.

[ 너 님하 이젠 죽었다능.....ㅋㅋㅋ, 도살장에 끌려온 듯 한 M3 스튜어트 경전차...-_-;; ]


사격 실험 결과 1,000 미터 거리에서 명중한 47mm 전차포탄 6발 중 3발이 전면장갑 관통, 800 미터 거리에서는 9발 중 6발이 전면장갑 관통에 성공하였으니, 비로소 일본 육군은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 97식 중전차 치하 改 (チハ改)의 47mm 전차포 사격 실험 후의 관통 흔적 ]


그리하여 우리의 신포탑 치하改는 필리핀 코레히도르 공략전에도 넘치는 자신감을 안고 참전하였다는 훈훈한 이야기로 이번 이야기는 끝날 수도 있었으나.....

[ 코레히도르 공략전에 참가 중인 전차 제7연대 소속의 치하改 ] 


다들 아시다 시피 그 이후에는 태평양 전선의 궁극의 킹왕짱! M4 셔먼 중(重이 아니라 中)전차가 등장하였다는 이야기를 끝으로 이번 이야기는 마무리 하겠습니다....^^


[ 아 너 님하 지금 저랑 다툴래여? 척추를 후방 3단으로 접었다 펴줄까여!?...태평양 전선의 쾨니히스 티거, M4 셔먼...-_-;; ]


P.S.

물론 일본 육군도 M4 셔먼에 맞서기 위해서는 대구경 장포신의 대전차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 본토에서는 75mm, 88mm 심지어 105mm 급의 대전차 포 및 이를 탑재한 전차 및 포전차(대전차 자주포 개념)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에대한 이야기는 일단 다음 기회로 미루겠습니다...^^


[참조 서적]

일본육군 전차와 포전차, 역사군상 태평양전쟁 시리즈 Vol. 34, 144~149 page


덧글

  • 위현자 2009/06/08 09:34 # 삭제 답글

    안녕합십니가?
    이런 미스릴 같은 자료을 제 블로그에 담아가도 됩니가?
  • Orca 2009/06/08 12:54 #

    미스릴....-_-;;

    아 예...담아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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