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2/02 04:58

러시아 훃아들이 처음으로 전차를 가졌을 때 Советский танк

지금이야 기갑 웨이브라는 이미지로 뇌리에 완전히 박힌 러시아 육군이지만,
그들도 처음에 탱크와 만나고 그 신무기를 개발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독소전에서도 이미 T-34란 걸출한 물건이 있었고 그 배경에는 크리스티 전차란게 있었는데,
그 이전의 개발 과정은 무엇일까 늘 궁금했었습니다만.....

이번에 마침 중고책 가게에서 구한 책도 있고 한지라 간단히 써보겠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어지는 내용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붉은 군대의 전차를 사용한 첫 전투는 내전 중인 1920년 7월 4일에 발생했습니다. 이는 보병과 장갑차, 장갑 열차를 포함한 일종의 합동작전 이었는데 이때 사용된 전차는 영국의 Mark Ⅴ, 위피트(Whippet) 전차, 그리고 프랑스의 르노 FT 전차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원래 영국과 프랑스가 백군을 지원하기 보낸 물량을 적군이 탈취한 것으로서 사실 내전 기간동안 붉은 군대에 의해 전차는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가 없었습니다.

첫째로 백군에 지원된 전차의 물량 자체가 130대 정도 수준이었으니, 이것을 노획해야 하는 적군의 입장에서 그 숫자는 더욱 제한될 수 밖에 없었읍니다.

두번째로 그 당시 전차란 물건은 아직 기술적으로 불안정한 것이었고, 러시아 내의 공업기반도 아직 취약할 때라 전차의 운영에 필요한 예비 부품 및 연료 등을 확보하기가 상당히 곤란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의 내전 자체가 광대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기동전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당시의 느리고 항속거리도 짧은 전차는 그다지 활약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 러시아가 최초로 사용한 전차인 위피트(위 사진 좌측), Mark Ⅴ(위 사진 우측), 르노 FT 전차(아래 사진) ]


어쨓든 1920년 러시아 육군은 노획한 전차들을 Mark V는 Type B(bolishie, 대형), 위피트는 Type S(srednie, 중형), 르노 FT 전차는 Type M(malie, 소형) 전차로 분류하여 전차 부대의 조직을 구성했습니다. 이는 아직 전차의 전술적 용법 보다는 보급 및 유지 보수의 편의성에 더 주안점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러시아의 내전이 적군의 승리로 끝나자 붉은 군대는 이 새로운 신무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들이 입수한 서방의 전차를 역설계하여 자국내에서 생산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대상으로 선택된 것은 르노 FT 전차인데, 그 이유는 이 전차가 가장 소형이고 다른 전차들 보다 간단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산을 담당한 곳은 AMO(Avtomobilnoye Moskovskoye Obshchestvo) 공장으로 비록 1대 만이 신규 생산 되었지만 러시아는 14대를 생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마 이들은 노획한 르노 FT 전차를 재생한 물건으로 추정됩니다.


[ 자유의 투사 레닌 이라는 어마어마한 이름이 붙은 러시아의 르노 FT  재생 전차 ]


사실 러시아의 국산 전차 생산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는 산업 시설과 관련 기술의 부족이었습니다. 따라서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 인지라 러시아 전차의 1920~24년 기간의 개발은 모두 페이퍼 플랜 수준을 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1923년에 조직된 전차 연구 위원회는 1916~18년에 일어난 전차의 주요 작전을 연구하여 붉은 군대에 요구되는 전차의 사양이 무엇인지를 최초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1925년에 설립된 전차 연구를 위한 기술 위원회는 소련의 첫 양산형 전차를 탄생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1926년 보병의 근접 지원을 위한 전차의 개발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1927년 3월 T-16으로 명명된 전차가 시험 운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트랜스미션의 개량, 로드휠의 추가와 같은 개선사항이 건의 되었고, 그 해 중반 곧이어 T-18로 명명된 신형전차가 주행실험을 실시하여 적합 판정을 받게 됩니다.

소련 당국은 1928~29년 까지 108대의 전차가 생산되도록 주문했고 특히 30대는 1929년 11월 7일 혁명 기념일 전 까지 준비되도록 명령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미약했던 소련의 공업생산력은 이 정도의 주문도 소화하기 벅찼습니다. 특히 볼 베어링 같은 부속품의 제조에 곤란을 겪었는데 이는 결국 수입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 메이 데이 기념으로 붉은 광장에서 퍼레이드를 펼치고 있는 소련의 첫 양산형 전차 T-18 ]


야전 훈련 등을 통해 참호 돌파 능력의 부족 등도 지적되었고, 결국 소련 군사 위원회는 T-18이 미래의 전장에는 적합하지 않은 전차라고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단, 신규 전차가 개발될 때 까지 일정 수치는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1928~31년간 T-18은 총계 989대가 생산되었고, 포탑의 개량을 통한 무전기의 설치(그렇다고 모든 전차에 무전기가 지급되지는 않음), 엔진출력을 40hp 까지 향상 시키는 등의 개선 노력도 이루어 졌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호치키스 37mm 포의 카피 버젼인 무장을 포구 초속이 높은 신형으로 교환하고자 하는 계획도 있었으나 이는 결국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비록 존재감이 없는 전차이긴 하지만 1929년 발생한 중국과의 국경 충돌에서 T-18 전차는 보병의 원호에 사용되었으며, 1941년 6월 독일의 침공시에도 소수가 전투에 참가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끝으로 소련의 첫 양산 전차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고자 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소련의 전차 개발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면 영국과 미국으로 부터의 전차 수입, 독일과의 협력, 그리고 소련의 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이야기 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종심전투(Deep battele)과 종심작전(Deep operation) 교리의 발전에 따른 소련 전차에의 성능 요구 사항 등등을 전개해야 하는 군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음 기회에 써 보겠습니다.....^^;;


[참조자료]

Russian Tanks of World War Ⅱ, Tim Bean and Will Fowler, 7~21 page
 

덧글

  • 금린어 2008/12/02 12:25 # 답글

    후리덤 화이터 레닌이군요. 저 위피트는 초기 전차다운 후잡스러움이 돋보여서 예쁜것 같습니다 ㅎㅎ 영국제는 나중에도 후잡스럽지만(?!).
  • Orca 2008/12/02 18:17 #

    진짜 Feedom Fighter Lenin 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 Triumph 2008/12/04 20:53 # 답글

    러시아의 초기형 전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이 글이 큰 도움이 되는군요. 잘 읽고갑니다~
  • Orca 2008/12/05 04:16 #

    도움이 되셨다니 감사합니다...^^;; 언제가 될 지는 기약할 수 없지만 다음 편도 기대해 주세요...ㄳ
  • 위현자 2009/06/10 09:20 # 삭제 답글

    원본 이 미스릴광산(?) 것군여......ㅡ_ㅡ
  • Orca 2009/06/10 21:48 #

    무슨말씀 이신지...잘...^^;;
  • 위현자 2009/06/11 02:56 # 삭제 답글

    여기가 원출처가여?
  • Orca 2009/06/11 12:42 #

    원출처라...머 제가 작성한 포스팅이 맞긴 맞지만...원출처는 말미에 적어 놓은 [참조자료]에 나와있는 책이라고 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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